귀신을 사랑한 장미
Hijikata Toshiro X Mei

MAYO/Toshiro

키스데이

2022. 6. 14. comment

뭛 님 cm

 

연인 간의 기념일. 가장 흔한 발렌타인 데이부터 시작해, 아는 사람들만 아는 기념일도 존재한다. 6월 초여름에 존재하는 키스 데이는 그 이름에서부터 단내가 느껴질 정도로 연인에게 적합한 기념일이었다. 데이트 코스와 관련된 공간은 예약이 꽉 차고, 뒤이어 조금이라도 로맨틱한 면이 있는 식당도 만석이 되는게 흔했다.

 
키스 데이의 존재를 모르던 사람도 이러한 변화를 알게 되었다. 당장 진선조만해도 대원들이 호들갑 떨었다. 어딘가 달달해 보이고, 낯부끄러운 명칭에 꺅꺅거렸다.
 
메이도 비슷한 이유로 들떠 있었다. 히지카타와 단둘이 거리를 산책하며 그를 수시로 올려다보았다. '퇴근 후'라는 조건이 붙긴 했어도 피곤함보다는 설렘이 강한 밤이었다.
 
"히지카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메이가 눈을 반짝거리며 곁에 있던 남성에게 질문했다.
 
버릇처럼 담배를 입에 물었던 히지카타가 메이를 한번 보고는 바로 개비를 버렸다. 주변에서 금연하라고 성화라 머리로는 언젠가 해야지, 하고 있었으나 중독이란 게 쉽게 고쳐지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본래 흡연보다도 간접흡연이 더 나쁜 법. 적어도 코앞에서 연기를 풍기는 건 조금 자제하기로 했다.
 
"무슨 날인데?"
"키스 데이잖아!"
"그래?"
 
이 눈치 없는 남자를 어쩌면 좋을까. 메이는 제 이마를 때리고 싶은 감정을 억눌렀다. 보통 이렇게 운을 띄우면 어떤 방식으로든 호응을 해줘야 하는데 히지카타는 똑바로 말해주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했다. 왜, 고백도 그녀가 먼저 하지 않았던가. 히지카타가 제 마음을 표현하는데도 상당히 오래 걸렸고.
 
"키스 데이의 유래는 알아?"
"아니, 뭔데?"
"연인들이 자기 마음을 확인하며 키스를 나누는 날이래."
 
그녀가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들뜬 마음에 날아갈 거 같았다.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다 들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진정이 안 됐다.
 
연인은 곧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는 의미고, 서로 좋아하는 사이에는 스킨십이 발생하기 마련. 그중에서도 상대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시나 키스였다. 손을 잡는 건 친구끼리도 할 수 있고, 포옹은 인사로도 이용할 수 있지만, 입술이 닿는 건 최소 연인은 되어야 가능한 단계였다. 그렇기에 키스 데이라는 기념일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 핑계로라도 진전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그러나 히지카타는 메이의 기대를 완전히 부숴버렸다.
 
"어쩐지 대원들 상태가 이상하다 했지. 이런 건 죄다 상술이다. 돈 뜯어가려는 밑작업."
 
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발렌타인 데이처럼 오랫동안 역사에 존재했던 기념일을 제외한 나머지는 최근에 생겨났다. 와인 데이, 쿠키 데이, 로즈 데이, 등등. 그는 매달 있는 기념일이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존재라는 느낌을 떨치지 못했다. 특히나 가게나 식당에서 오늘은 어느 무슨 기념일이니 특별 상품을 판다면서 가격을 무작정 높이는 상술을 벌이니 곱게 보이지 않았다. 진선조는 어디까지나 '경찰'이었으니까.
 
아니나다를까, 당장 오는 길에 기념품의 탈을 쓴 바가지 상품을 발견했다. 고작 며칠 전에 재고 떨이로 반값에 판매하던 걸 본 입장에서는 헛웃음만 나왔다. 그나마 이 정도는 애교로 눈 감아줄 수도 있는데, 구매자가 대폭 늘어난 틈에 허가받지 않은 제품을 매대에 올리는 몰상식한 장사치도 있었다.
 
대원들은 더욱 심각한 모습이었다. 입술에 뭘 발랐는지 기름칠한 것처럼 번들거리는 녀석도 있고, 하트 모양의 팔찌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강력한 향수. 무엇인지는 안 봐도 뻔했다. 연애 운을 올려주는 팔찌라던가, 키스를 부르는 립스틱, 사랑에 빠지는 달콤한 향수, 이딴 걸 거다.
 
"눈에 뻔히 보이는 사기에 넘어가다니. 바보도 아니고."
 
명색이 진선조라는 놈들이 상술에 넘어가 매출이나 올려주고 있으니 실로 답답했다. 그가 목소리를 높여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서로 투닥거리며 다투는 게 일상이어도 막상 다른 사람에게 얻어맞고 오면 화가 나는 게 진선조의 특징이다. 자기가 놀리는 건 괜찮아도 남한테 무시당하는 건 못 참았다. 당연히 현 상황에 분노했다.
 
험한 말이 날아갈 뻔한 걸 참은 이유는 어찌 보면 그들도 사기 피해자여서다. 피해자를 손가락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 한들, 눈에 뻔히 보이는 상술에 홀라당 넘어간 것에 대한 교육은 똑바로 시킬 예정이었다.
 
그가 열변을 토해낼수록 메이의 머리 위로는 먹구름이 가득해졌다. 히지카타와 단 둘이 있을 때면 늘 입꼬리가 올라가 방실거리던 표정이 오늘 자는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심지어 입술이 뾰족하게 나와 있기까지 해 그녀의 마음을 알아채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메이는 답하지 않았다. 그를 무시해 버린 채 발에 속도를 붙여 빠르게 걸어갔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화 난 거 같은데."
"아니라니까."
 
야토족답게 발걸음이 빠른 그녀를 따라잡고자 히지카타는 열심히 달려야 했다. 산책이라기보단 경보, 아니 마라톤에 가깝게 변해버렸음에도 히지카타는 차분히 그녀를 따라갔다.
 
"대체 왜 그러는데? 배고파?"
"그게 아니라...!"
 
아무리 야토족이 대식가라 해도 그렇지, 누구를 밥에 환장한 줄 아나. 한소리 크게 내지르려고 몸을 돌린 메이는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무심해보이는 표정은 얼핏 걱정스러워 보였다. 무언가가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는 건 알겠는데 원인을 몰라 의아해하는 얼굴.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은 그가 순수하게 몰라서 묻고 있다는 걸 나타냈다.
 
진짜 모르는구나. 진짜 몰라서 이랬다.
 
"나는... 오늘이 키스 데이라서 기대했어."
 
그녀가 손을 꼼지락거리며 대답했다. 입술을 앙다물고 투정부리고 있었다. 그가 메이를 바보 취급한 건 아니었다. 히지카타가 불만을 표한 것은 기념일을 핑계로 한탕 하려는 자들을 향한 거다. 하필 피해자가 진선조 대원이라 더욱이 화를 냈고 말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키스 데이를 상술로 표현한 그와, 키스 데이를 기대했던 메이 사이에는 큰 거리가 생기게 되었다.
 
한번 말하고 나니 속이 부글부글 끓던 것이 급속도로 평온해졌다.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짜증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는 것 역시도 사랑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진정되자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했다. 이건 히지카타의 잘못이 아니었다. 서로 생각하는 게 다른 건 당연한 일이다. 누군가는 공개된 장소에서 고백하는 이벤트를 선호하는 반면, 누군가는 질색할 수도 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에게 무작정 화내는 건 실로 못난 짓이었다.
 
막상 깨닫고 나니 뺨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아이가 된다는 의미를 이해할 거 같았다. 사소한 일에도 섭섭하고, 모든 걸 자신에게 대입해서 생각해 감정이 들쑥날쑥 널뛰었다.
 
"음... 솔직히 나는 키스 데이가 이해 안 돼."
 
그거야 진작에 알아봤다. 말투에서 묻어나온 건 당연하고 메이는 상대의 반응을 수시로 살피고 있었다. 시무룩해진 그녀의 어깨가 처져 애꿎은 바닥만 하염없이 바라볼 때.
 
"그걸 꼭 오늘 하루만 해야 하나? 매일 사랑하고, 매일 키스하고 싶으면 어쩌라는 거지?"
 
메이는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눈을 깜빡거렸다. 그가 한 말을 도저히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해 머릿속에서 되새겨야 했다.
 
"뭐?"
"그렇잖아. '연인들이 자기 마음을 확인하며 키스를 나누는 날'이라고 했는데... 매일 그러고 싶으면? 평소에 하고 싶어도 1년을 참아?"
 
그는 스스로 말하고도 부끄러운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귀는 살짝 붉어진 상태로, 무심하게 내려앉은 얼굴에도 미세한 변화가 생겼다.
 
"나랑 매일 키스하고 싶어?"
 
메이가 방방 뛰며 기쁘게 물었다. 가슴을 파고드는 한마디에 심장이 터져버릴 거 같았다. 한시라도 빨리 이 마음을 해소하고 싶었다. 그녀가 폴짝 거릴 때마다 양 갈래로 묶은 머리카락이 같이 파닥거렸다. 깜찍한 모습에 히지카타는 멋대로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고자 고개를 돌려버렸다.
 
"글쎄."
"글쎄라니! 네, 아니요로 대답해."
"네니요."
"히지카타아아~!"
 
애먼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져도 그는 입꼬리를 한쪽으로 올리며 웃을 뿐, 메이가 바라는 대답은 해주지 않았다.

11월 11일. 빼빼로(포키) 데이라고 불리는 날은 최근에 새로 생겨난 기념일이었다. 어디 저기 동방 쪽의 기념일이었는데 사람들은 쉽게 익숙해졌다. 꼭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빼빼로를 주는 게 아니라 친구사이, 가족, 혹은 사제지간에서도 충분히 교환할 수 있어 선호도가 높았다.

 
메이는 흔히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빼빼로를 진선조 대원에게 하나씩 돌렸다. 일종의 우정 빼빼로였다. 그러면 상대도 답례 빼빼로를 주는 둥, 즐거운 선물 교환 시간이 벌어졌다.
 
몇 안 되는 평화로운 나날임에도 히지카타는 뚱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게, 아직 자신은 단 하나도 못 받아서였다. 대원들은 그렇다 쳐도 메이까지 주지 않는 건 섭섭한 일이었다.
 
눈을 잘게 뜨고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을 눈치챈 메이가 몸을 핑그르르 돌리며 크게 말했다.
 
"부장? 왜 그렇게 봐? 서얼마 이 빼빼로를 받고 싶은 건 아니겠지? 전부 돈 벌려는 상술이라며?"
 
그녀가 입을 크게 벌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색한 연기로 일부러 더 티 내는 상황이었다. 두근두근 설레던 키스 데이를 망친 일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꽁해 있다고 놀려도 상관없었다. 히지카타가 달콤한 말을 속삭여준 것과는 별개로 속상한 건 속상한 거니까.
 
어머나, 세상에, 그럴 리가! 라고 추임새를 넣어주는 대원들까지 합세하자 히지카타는 정신을 못 차릴 거 같았다.
 
정말이지 사람 놀리는데는 진심인 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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